2010년 04월 12일 중앙일보 - 강박증, 벗어나고픈 '씻고 또 씻고, 확인 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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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1
작성일 2022-05-04 11:17 댓글 0건 조회 1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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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이주연.강일구] 천안함 침몰 이후 나라 전체가 어수선하다. 사회적 충격이 큰 사건을 연일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정신건강은 민감하게 반응한다.더구나 사고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아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4월 정신건강의 달을 맞아 불안장애의 하나인 강박증에 대해 알아본다.
깔끔함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 시트콤 ‘볼수록 애교만점’(MBC)의 규한은 결벽증이 있어 지저분한 걸 극도로 싫어한다. 식당 수저는 세척이 덜된 것 같아 회식 때도 전용 젓가락과 숟가락을 들고 다닐 정도. 뭐든 정리정돈이 되지 않은 건 참을 수 없다. 어느 날 규한은 난장판이 된 동생 방을 보고 ‘청소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자신의 방만은 건들지 말라’는 동생 때문에 눈을 질끈 감고 외출하지만 더러운 동생 방이 자꾸 떠올라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규한은 결국 집으로 돌아가 청소를 시작한다. 강박증인 것이다. 남들에겐 우스꽝스러운 상황일지 몰라도 한 가지 생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강박증 환자는 괴롭다.
무의미한 줄 알면서도 반복하는 게 특징
최근 강박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강박장애 질환으로 진료를 받은 진료환자가 2005년 1만2995명에서 2008년 1만8271명으로 40% 이상 증가했다.
연세대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김찬형 원장은 “강박증의 평생유병률은 전체 인구의 2~3%로 비교적 흔하다”며 “과거에는 자신에게 강박증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사람이 많았으나, 영화나 드라마·소설을 통해 증상이 알려지면서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강박증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특정한 생각이나 행동을 반복하는 증상을 말한다. 예컨대 방금 문을 잠갔는데도 확실히 잠겼는지 불안해 몇 번이고 다시 돌아와 확인하거나, 보도블록의 금이 간 부분은 밟지 않아야 한다는 데 집착하는 식이다. 스스로도 무의미하다는 걸 알지만 멈출 수 없다.
일반적인 잡념과 달리 한번 입력된 강박적 사고는 떨쳐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지면서 불안감을 증가시킨다. 결국 극에 달한 불안감을 감소시키기 위해 강박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
일상생활에까지 문제 생기면 치료해야
강박증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고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알코올·게임 등에 의존하는 중독장애와 닮았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중독도 넓은 의미에선 강박 관련 장애”라며 “중독은 어느 정도 쾌감을 얻기 위해 빠져들지만, 강박증은 본인이 하고 싶지 않은데도 하게 된다는 점에서 자아(自我) 이질적”이라고 했다. 강박증은 자신도 원치 않는 생각이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것을 지칭하기 때문에 배우자의 정절을 실제 의심하는 의처증이나 의부증과 다르다.
사실 많은 사람이 사소한 강박증상을 가지고 있다. 흔히 ‘죽을 사(死)와 음이 같아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고 피하는 숫자 4에 대한 징크스나,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 두는 것도 강박증의 일종이다.
이처럼 강박증은 정상적인 행동이 많 아서 병적인 상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게 손 씻기. 신종 플루가 유행한 지난해 ‘1일 8번 30초씩 손을 씻자’는 ‘1830 건강 캠페인’보다 더 자주 손을 씻으면 강박증인 건지 기준이 모호하다.
서울대병원 정신과 권준수 교수는 “일반인에게도 약간은 강박증이 있을 수 있으나, 정도가 심해 학업이나 직업·가정 등 일상생활에 고통이 따르거나 대인관계에 지장이 있다면 병으로 보고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통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강박증에 시달려 힘들다면 치료 대상이다.
뇌 발달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
강박증은 생각이나 행동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하는 뇌의 특정 부위가 이상을 일으켜 발생한다. 이마 쪽 전두엽 중에서도 아래쪽의 안와피질(orbital cortex)과 대뇌 속 깊숙이 섬처럼 위치한 바닥핵(basal ganglia)의 연결회로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권 교수는 “정상적인 뇌는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면 그에 따른 적절한 반응을 하기 위해 기존 자극과 관련된 뇌 기능을 억제한다. 반면 강박증 환자의 뇌는 새 자극이 들어와도 기존 자극을 처리하는 회로가 억제되지 않고 활동을 계속한다”고 설명했다. 기존 자극에만 반복적으로 반응을 보이며 얽매이다 보니 강박사고와 행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강박증은 대개 10대 중·후반에서 20대 초에 시작된다. 김찬형 원장은 “뇌 신경세포가 성장과 함께 형성됐다가 재정립되는 시기에 일부 발달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환자의 3분의 2가 25세 이전에 발병하며, 남자는 여자보다 이른 사춘기에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입시경쟁 등 극복해야 할 여러 과제에 처음으로 크게 부닥치면서 스트레스가 많아진 것도 이유다.
유전적 성향에 대해선 아직 연구 중이나, 강박증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랐을 경우 일반인에 비해 강박증이 나타날 확률이 3~5배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모든 것이 완벽하길 강요하는 부모의 양육태도가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불안한 마음 참아내기’ 연습하는 것도 치료
한번 고착된 성격이나 버릇·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강박증도 마찬가지. 치료하지 않고 묵혀 둔 기간이 길수록 치료가 쉽지 않다. 불필요한 사고와 행동에 들어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을수록 혼자 고립되거나 또래보다 뒤처진 경우도 많다. 따라서 증상이 시작된 초기에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치료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가 있다. 인지행동치료는 환자에게 자신을 괴롭히는 강박충동이 뇌에서 보낸 잘못된 신호라는 것을 인식하고 이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 가령 손을 자주 씻는 환자에겐 더러운 것을 만지고 손을 못 씻게 한다. 세브란스정신건강병원 노대영 강사는 “환자가 유독 불안을 느끼는 특정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불안에 취약한 환자가 참아낼 수 있도록 맷집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박증은 행복감과 관련된 뇌 속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과 관련이 깊어, 우울증에 쓰는 약물의 용량을 높여 장기간 투여한다. 5년쯤 치료해도 증상에 변화가 없으면 뇌 수술을 고려한다. 권준수 교수는 “강박증은 정상인에 비해 일부 뇌 신경회로의 활동이 증가한 것”이라며 “이같이 증가한 뇌의 활동은 지속적인 치료를 통해 정상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글=이주연 기자
사진=일러스트=강일구 기자 블로그 http://blog.joins.com/center/rep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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